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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석집 성매매에 대한 가설
    지옥하늘의 낙서장 2022. 8. 13. 04:22

    1. 처음 변종 성매매 업소 방석집이 개업된 것은 군사정부 시절인 1960년대에 어린 나이 때부터 의붓아버지의 학대로 가출을 하여 미군 위안부로 미군 집창촌에 뛰어들어 종사하다 나이가 들어서 40대가 이를 수록 스스로 자기가 일하던 미군 집창촌에서 떠나갔는데 더 이상 그 곳을 떠날 수 없다 해가지고 대출을 받아 개업한 때였다.

    그래서 이 곳을 처음부터 방석집이라고 불리우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꽃마차, 짝집이라고 불려왔다.

     

    2. 방석집에서 술 한 궤짝(박스) 당 20만원 작은병 맥주 2병마다 5만원씩 파는 이유..

    자신이 어릴 적부터 의붓가정의 지속적 학대와 미군 술집에서 위안부 일을 하는 동안 사병급 미군들에 의해 지속적인 성폭행과 폭행을 견디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지금까지 도입한 것이 위와 같은 술병 판매 방식이다.

    처음에는 손님들에게 맥주 2병에 한 궤짝당 양주 10병씩 팔다 서로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는 맥주 2병에 한 궤짝(박스) 당 양주 20병을 팔아 서로 마셨다.

    그 와중에 빈 병을 세어 계산하고 막대한 돈을 손님들에게 청구해왔다.

     

    3. 남은 술은 모조리 부어 버리는 법대로 버렸지만 어떤 때는 과거에 자신이 오랫동안 학대를 당한 경험을 달래기 위해서 몰래 남은 술을 빼돌려 마시는 경우도 많았다.

     

    4. 그 곳에서 일하는 방석집 유희들은 대부분 이혼하고 재혼한 가정에서 혁대나 몽둥이로 심하게 구타받고 방치와 학대를 받아 탈출한 십대 청소년들이었지만 새로운 유희들이 여기에 몰려든 것도 역시 혈연관계가 애매모호한 동거남 동거녀 밑에서 자라다 어릴 때부터 강간을 당해 자궁이 파열되거나 자기 생명이 위협받고 심한 구타를 지속적으로 받아와서 그 가정에서 탈출하여 그 곳 방석집으로 유입되어 있다고 한다.

     

    5. 그 곳에서 일하며 사는 성매매 유희들이 선불금, 미끼, 채무 문제로 사창가에서 지속적으로 일한 경우가 많다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6. 이 중에서 한부모 가족 탈출자이거나 낙태 경험자로부터 살해당할 위협을 받아온 아이들이었던 자들도 30%가 넘는다.

     

    7. 처음에는 그 곳 방석집에서 안정적으로 안주를 공급받으며 술을 공급받고 포주와 건물주들의 간섭 없이 돈을 화대로 벌고 열심히 성을 팔아서 자기 방석집 가게를 잘 운영하고 잘 살아왔지만, 그 곳에 방문하는 성구매 남자의 수도 15만 명이나 늘었는데.. 대부분의 만기 전역자 출신 서민 남성들은 그 곳에서 방문하여 그냥 술을 잔뜩 마시고 종업원의 몸을 부비부비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곳에 방문하여 그 곳에 일하는 방석집 유희들을 멱살잡아 심하게 여러번 폭력을 휘두른 사람 대부분은 현역 사병급 군인 내지 만기전역 후 마지막 휴가를 낸 군인들이었다. 일부분은 중년 남성으로써 그 유희들과 술을 마시다 뺨을 때렸는데.. 

    그것은 뺨을 치자마자 서비스 안 좋다고 돈 안내고 나가는 놈일 뿐이고..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그냥 여자와 대화하고 술 3병씩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지 군인들마냥 마구 패지는 않는다.

     

    8. 그리고 대한민국 전국의 방석집에서 2000년대부터 8년 동안 15건의 가혹한 폭력으로 숨진 성매매 유희 학대 살인이 벌어졌는데, 그 사망자 수가 약 300명이나 되고 부상자가 약 600명 정도 된다. 그런데 그 중의 40%는 군 복무 중 대인 지뢰 및 북한 목함지뢰 폭발로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의족 착용한 희생장교들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그것도 그냥 다리 절단 수술 받고 의족 착용한 예비역 희생장교들이 아닌 지뢰 폭발 후 다리 절단 수술을 마치고 곧바로 군에 복귀해 몇 년간 복무연장한 희생장교였다. (그 곳에 종사한 성매매 유희들이 하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판이하게 명확하다.)

     

    9. 여느 여성단체들이 성매매 향락의 소굴 현장에 들어가서 성매매 유희들과 대화해보니 대부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나 생계를 위해서 성매매 향락의 업계로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20대 여성이 회사에 취직하다 월급을 쪼렙으로 받아서 뛰어든게 아니라 대부분 부모들이 이혼하면서 자기 자식을 혼자서 키우다 병드니까 그 때문에 너무나 굶어죽으니까 자식에게 손을 빌리는 경우였다.

     

    10. 방석집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성매매 유희들은 그 곳에서 대부분 선불금이나 빛 상환을 못해서 이 곳에서 떠나려고 하기는 커녕 아예 자신이 그 곳에 나오면 어디로 갈 데 없고 경찰에게 끌려나가서 또 다시 과거 학대 가정에 돌려보낼려 할 참이라서 절대로 빚을 지고서도 그 곳에서 학대를 받더라도 절대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방석집이 계속 밤마다 운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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